① 마음챙김에서 마음의 본성으로_족첸, 이미 도착해 있는 마음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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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첸, 이미 도착해 있는 마음

 

시리즈①
마음챙김에서 마음의 본성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세상을 둘로 나눈다. 정치,성별,세대, 종교, 지역으로. 어떤 사안을 만나면 거의 반사적으로 판단한다. 내 편인가 아닌가. 옳은가 그른가. 문제는 이것이 저 바깥의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음챙김이 해온 일

 

지난 십수 년 동안 나는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했고, 알리는 일을 해왔다.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된다. 몸의 감각, 느낌, 생각,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얽혀 고통을 만들어내는지를 판단 없이 지켜보는 것이다.

 

이 수행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화가 올라올 때 화에 그대로 휩쓸리는 대신 '아, 지금 화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아주 작은 틈, 그 틈이 삶을 바꾼다는 것을  수백 명의 마보 과정 참가자들을 통해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붓다는 우리 고통의 뿌리를 탐(貪)·진(瞋)·치(癡) 세 가지로 분명하게 보셨다. 계속 '더, 더, 더' 하며 집착하는 마음, 밀어내고 성내는 마음, 그리고 뭐가 뭔지 모르는 흐릿한 마음이다. 마음챙김으로 길러진 알아차림은 일상에서 이 세 가지가 작동하는 순간을 붙잡아, 거기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는 힘을 준다.

 

여기까지가 내가 오래 걸어온 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질 수록 즉시 일어나는 판단도 더 잘 보게 된 것이다.

 

'지금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가 떨리네. 화가 올라오는구나. 화내면 안 되는데. 얼른 놓아줘야지.'

 

분명히 판단하지 않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화는 없애야 할 것, 고요함은 좋은 것. 잡념은 실패, 집중은 성공. 나는 번뇌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번뇌를 적으로 두고 있었다. 명상을 오래 한 사람들이 은근히 자주 빠지는 함정이 이것이다. 더 고요해져야 하고, 더 알아차려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더'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는 '지금은 부족하다'는 자리에서 성취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분별하는 마음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없애야 할까. 그런데 없애려는 그 마음도 결국 분별이 아닌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그러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답하는 전통을 만났다. 그것이 바로 티베트 불교의 족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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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첸, 위대한 완성

 

 

족첸(rdzogs pa chen po)은 티베트어로 '위대한 완성'이라는 뜻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대원만(大圓滿)으로 옮긴다. 티베트 불교 닝마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홉 단계로 나눌 때, 그 가장 마지막 자리에 놓이는 가르침이라 그렇게 부른다. '완성'이라는 말 때문에, 열심히 닦아서 마침내 도달하는 완성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다. 족첸이 말하는 완성은 처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책 『오늘도 괜찮은 척 버티는 마음에게』의 마지막 장에 이런 이야기를 썼다. 가난에 지친 한 사람이 보물을 찾아 집을 떠났다. 수십 년을 떠돌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늙고 지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 집 마루 밑에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족첸의 이야기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맑고 열린 마음은 수행으로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여기 있었다. 다만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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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첸의 세 기둥

 

이 관점을 티베트 전통은 세 마디로 정리한다. 

 

첫째, 본초청정(本初淸淨, 까닥 ka dag). 마음의 본질은 처음부터 깨끗하다. 나중에 닦아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더러워진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하늘을 떠올려보면 된다. 하늘은 아무리 많은 먹구름을 품어도 결코 더러워지지 않는다. 구름은 잠시 지나갈 뿐, 하늘 그 자체는 언제나 그대로다.

 

둘째, 임운성취(任運成就, 룬드룹 lhun drub). 마음의 본성은 저절로 갖추어져 있다. 애써 만들거나 조작하지 않아도 이미 살아 움직이고 빛나고 있다. 해가 '빛나야지' 하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빛나는 것처럼.

 

셋째, 두루 미치는 자비(툭제 thugs rje). 이 깨끗하고 저절로 갖추어진 본성은 안으로 닫혀 있지 않다. 끊임없이 바깥으로 반응하고 연결된다. 족첸에서 자비는 수행 끝에 얻어내는 훈장 같은 게 아니라, 본성이 원래 지닌 세 번째 얼굴이다.

 

그리고 이 셋이 실제로 알려지는 바로 그 순간을 릭파(rig p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옮기기 참 어려운 말인데, 굳이 말하자면 '순수한 앎 그 자체'다. 여기가 마음챙김과 미묘하게 갈라지는 지점이다. 마음챙김이 훈련해서 길러내는 힘이라면, 릭파는 길러내는 게 아니라 그저 알아보는 것이다. 릭파는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온전히 여기 있으니, 더 노력해서 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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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족첸 수행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직지(直指, 응오뙤 ngo sprod). 족첸의 출발점은 스승이 제자에게 마음의 본성을 직접 가리켜 보이는 것이다. 말로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제자가 직접 알아보고 경험할 수 있게 돕는다. 그래서 족첸은 책으로 배우는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전달된다. 

 

트렉쵸(khregs chod/Trekchö). '(단단하게) 뭉친 것을 끊어버림'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고치거나 만들려 하지 않고, 손대지 않은 채 본래의 앎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면 없애려 하지 않는다. 붙잡지도 않는다. 그냥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둔다. 마치 끈이 풀려 스르르 흩어지는 짚단처럼, 물 위에 쓰자마자 사라지는 글씨처럼.

 

토걀(thod rgal). '뛰어넘기'라는 뜻으로, 빛의 현현을 다루는 깊은 수행이다. 반드시 스승의 직접 지도 아래에서만 이루어지며, 충분한 예비수행이 먼저 필요하다.

 

족첸수행의 길을 세 문장으로 압축한 유명한 가르침이 있다. 족첸의 시조로 전해지는 가랍 도르제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세 마디다.

 

하나, 자신의 마음의 본성을 직접 알아본다. 

둘, 그 한 가지를 확신한다. 

셋, 생각이 스스로 풀려나는 자리에,
그 확신 속에 머문다.

 

알아보고, 확신하고, 그 확신 안에서 산다. 천 년이 넘도록 이 짧은 세 마디가 수많은 수행자들의 마음을 열어왔다.

 

오는 9월, 한국에 모시는 나의 족첸 스승 켄포 예시님이 바로 이 가르침을 나눠주신다. 9월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세첸코리아 큰마음 명상센터에서 가랍 도르제의 이 세 마디를 중심으로, 우리가 직접 '직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마음챙김수행과 족첸, 무엇이 다른가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마음챙김 수행(위빠사나)는 번뇌를 없애는 수행이고, 족첸은 번뇌를 끌어안는 수행이라고. 하지만 위빠사나도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챙김의 핵심이다. 둘을 굳이 대립시키면 오히려 부정확해진다. 다만 강조하는 방향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어디에 주의를 두는가. 위빠사나는 경험의 내용을 본다. 몸, 느낌, 마음, 법. 족첸은 그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 앎 자체로 돌아선다. 화면에 나오는 영상을 보는 것과, 그 영상이 비치고 있는 화면 자체를 알아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둘째,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대부분의 수행은 '지금은 부족하니 닦아서 이룬다'는 구조다. 원인을 지어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족첸은 거꾸로, 결과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미 그러하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티베트 전통에서는 족첸을 결과의 수레(결과승, 果乘)라고 부른다고 한다.

 

셋째, 번뇌를 무엇으로 보는가. 여기가 핵심일 것이다. 위빠사나에서 탐진치는 지켜보다가 놓아주어야 할 대상이다. 족첸에서는 그 탐진치의 본성 자체가 이미 지혜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화가 올라올 때 그 화의 본성을 그대로 꿰뚫어 보면, 거기에 이미 또렷한 명료함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없애서 지혜가 되는 게 아니라, 알아보면 원래부터 지혜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족첸을 통해 깨달은 수행의 지혜였다. 분별하는 마음마저 밀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바로 그 자리, 그 자리가 마음의 본성이라는 것.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것은 어느 쪽이 더 낫냐는 우열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족첸 전통도 기초 수행을 강조한다. 티베트에서는 족첸에 들어가기 전에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마음의 힘을 오래 기른다. 마음이 안정되고,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윤리적 삶의 기반이 잡힌 다음에야 '애써서 애쓰지 않음(effortless effort)'의 참뜻이 열리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전통에도 대상을 정하지 않고 일어나는 그대로를 지켜보는 '대상 없는 알아차림'을 강조하는 스승들이 있다. 깊은 자리에서 두 길은 결국 만난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지금도 여전히 내 수행의 바탕이다. 족첸은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챙김이 데려다준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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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우리에게 족첸이 필요한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세상을 둘로 나누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족첸수행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붓다의 첫 번째 가르침인 중도는, 극단적인 고행과 감각적 쾌락이라는 두 극단 어디에도 서지 않는 태도였다. 이후 용수(나가르주나)를 거치며 중도는 '있다'와 '없다'라는 이분법 자체를 넘어서는 통찰로 넓어졌다. 족첸의 '분별하지 않음'은 이 오래된 계보 위에 서 있다.

 

『오늘도 괜찮은 척 버티는 마음에게』에 이렇게 썼었다.

 

중도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지는 이분법적 판단 자체를 잠시 내려놓는 길이다. 그것은 현실에 마음을 활짝 열고, 지금 이 순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살아 있는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태도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애써왔고, 내 편과 남의 편을 빠르게 나누며,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 족첸은 뜻밖의 말을 건넨다. 맞힐 정답도, 나눌 편도, 감출 부족함도 처음부터 없었다고. 너는 이미 온전하다고. 그 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알아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리고 족첸은 바로 그 '알아봄'을 향한 수행이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

 

9월, 나의 족첸 스승이신 켄포 예시님의 방한에 맞추어 한 달 동안 족첸을 소개하는 글을 이어 써보려 한다. 이 시리즈는 세 편으로 이어진다.

 

2부, 족첸은 어디서 왔는가. 족첸 수행의 1300년 계보를 따라간다. 가랍 도르제 전설과 그 역사적 진실, 8세기의 티베트 전래, 14세기 롱첸파의 체계화, 그리고 오늘까지.

 

3부,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이 말하는 마음의 본성. 우리 나라의 불교 전통에서도 강조하는 본래성불, 기독교 신비주의의 부정신학, 수피즘,인도의 다른 수행 전통. 서로 만난 적 없는 전통들이 어떻게 이토록 비슷한 지도를 그렸는지 살펴본다.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길에서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4부, 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종교적 색채를 완전히 걷어내고, 신경과학이 이 수행에 대해 무엇을 밝혀냈고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조사해 볼 것이다. 『명상하는 뇌』에서 리처드 데이비드슨과 대니얼 골먼이 소개한 연구들을 중심으로.

 

나는 우리 집 마루 밑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진짜 무서운 점은 따로 있다. 보물이 거기 있다는 말을 듣고도, 우리는 대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다시 짐을 싸서 길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 함께 그  짐을 잠시 내려놓아 보자는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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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첸 스승, 켄포 예시님의 가르침을 만나보세요!

 

🌿 서울 강연 (9/3) 
▶ 신청하기: https://www.mabopractice.com/class/6a4729ce9e5f02a6e9e30a49

 

🌿 주말 법회 (9/5~6)
▶ 신청하기: https://forms.gle/JkjW8zqLp9BBAdi69

 

🌿 집중 안거 (9/9~13)
▶ 신청하기: https://forms.gle/CPo5fg26BxUAy5x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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