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만 4천 가지 생각 너머|켄포 예시님 족첸 강연을 듣고

2026.09.07

KakaoTalk_20260907_143922696.jpg

 

 

2026년 9월 3일. 처음으로 켄포 예시님을 만나는 자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스트비 홍대선원에 일찍 도착했다. 서울 한가운데에 이런 템플이라니. 복잡한 도심의 미로를 지나다 숨 돌릴 곳을 하나 찾은 기분이었다.

 

일찍 온 덕에 직원분께서 차를 권해주셨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작은 찻잔의 온기를 손에 쥐고 한 모금 기울이니, 몸이 데워지는 만큼 마음도 함께 덥혀지는 느낌이 좋았다.

 

 

KakaoTalk_20260907_143922696_01.jpg

 

 

드디어 켄포 예시님이 들어오셨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부드럽다'였다. 인자한 미소가 긴장을 녹이는 것 같았고,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셔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었다.

 

강연이 시작되자 70명이 넘는 분들이 자리를 채웠다. 마보 유정은 대표님의 통역으로 '족첸'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불교의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명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고 의문을 품고 힘들어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출발했다.

 

 

KakaoTalk_20260907_143922696_03.jpg

 

 

족첸은 '무엇에 대해' 명상하지 않는다

 

켄포 예시님은 흔히 명상을 '어떤 대상에 집중하는 상태를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운을 떼셨다. 호흡에 대해 집중한다는 식으로.

 

그런데 족첸은 무엇에 '대해(on)'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에 대해'라는 관점에는 이미 주체와 객체가 나뉘는 이분법이 들어 있다. 족첸은 그 틀에서 벗어난다.

마음에 대해(on the mind)가 아니라, 마음에서 · 마음을(at the mind) 보는 것과 관련된다고 하셨다.

 

 

생각은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일까. 마음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막상 그 본성을 물으면 답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미스터리한 것이 마음이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생각 자체가 마음은 아니라는 것.

 

켄포 예시님은 사람이 하루에 8만 4천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이 대목에서 다들 놀라셨다는…). 그리고 생각은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라고.

하루에 8만 4천 가지 생각이라니. 피곤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겠다 싶었다. 머릿속에 멈출 수 없는 자동화된 기계가 하나 들어 있는 걸까.

 

진흙탕 물을 가만히 두면

 

그런데 족첸에서는 생각을 멈출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하셨다.

 

진흙탕 물을 떠올려 보자. 뿌연 물을 가만히 두면 어느새 진흙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쉴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생각을 멈출 수 있는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멈춤으로써 생각을 더 잘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말씀도 함께 해주셨다.

 

마음을 본다는 건 생각을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 자체를 보는 것이고, 그건 마음의 본성을 마주하는 일이다.

생각을 구름에 비유한다면, 구름이 걷힌 뒤의 푸른 하늘을, 빛나는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쉴 수 있게 된다.

 

 

KakaoTalk_20260907_143922696_04.jpg

 

 

그래서 어떻게 멈추나

 

어떻게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켄포 예시님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하셨다.

손가락을 튕기는 찰나 같은 짧은 순간이라 해도, 생각이 멈춘 그 자리에서 마음의 본성을 마주하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말로 옮기기가 어렵다. 자꾸 '마음을'이라고 목적어로 쓰게 되어서, 언어상으로는 내가 마음을 본다는 주체-객체의 분리가 생겨버린다. 가장 정확히 표현한다면 내가 그 마음의 본성 안에 있게 되는(be in) 것, 그때에야 쉴 수 있다는 뜻일 테다.

 

여기 적은 게 전부는 아니다. 정작 제일 집중해서 들었던 대목에서는 기록하는 걸 잊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그래도 괜찮다. 켄포 예시님이 인간은 어차피 99%는 잊고 산다고 하셨으니까.

 

 

다른 문에 조명이 켜지는 느낌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어렵기만 할 줄 알았는데, 종교를 떠나 내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살피며 명상에 입문한 사람으로서 이번 강연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문제라고 여기며 계속 응시하고 있던 문이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에 조명을 비추고 그쪽으로 안내하는 느낌이었달까.

'더, 더, 더' 하며 애쓰는 길이 아니라, 덜 애쓰는 길로.

 

오는 10월 9일 한글날에는 또 다른 족첸 스승 말콤 스미스 선생님이 오신다. 족첸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오랜 세월 꾸준히 연구하고 번역해온 분이라는 게 약력에서 느껴졌다.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그 긴 시간을 한 길로 걸어왔다는 게 뭉클했다.

 

강연 제목은 '애쓰지 않는 마음챙김'. 더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 답이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은데, 애쓰지 않는 마음챙김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얼 덜어낼 수 있을까.

 

 

말콤 스미스 내한 서울 대중 강연
〈애쓰지 않는 마음챙김: 족첸 입문〉
· 일시: 10월 9일(금) 오후 4시~6시
· 장소: 저스트비 홍대선원
· 한국어 통역, 질의응답 있음
· 신청: https://www.mabopractice.com/class/6a96859cd15d636cb0dcd76a

또 다른 게시글
게시글이 없어요.
관련 소식
게시글이 없어요.